청양행복교육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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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역사

군량리산성 위치

  • 주소 : 청양군 장평면 관현리

양읍에서 대천쪽으로 통하는 36번 국도를 타고 1.5km쯤 가면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36번 국도가 되고, 왼쪽으로 가면 610번 지방도로가 되고, 가운데 길로 직진하면 군량리 ‘큰골’에 이른다. 군량리산성은 이 큰골마을의 뒤쪽에 솟아있는 표고 300m의 성재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의 석축산성이다. 산성이 자리한 성재산은 서쪽에 솟아 있는 표고 400m의 천마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가지능선의 동남쪽 끝에 해당된다. 따라서 서쪽으로는 전망이 막혀 있는데 비해 동쪽으로는 멀리 청양읍내와 우산성, 테뫼산성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이 자리한 성재산은 표고 300m에 이르지만 실제 높이는 120m에 불과하다. 그러나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성벽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성재산은 남북으로 연접된 두 개의 산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실제 성벽도 이 두 봉우리를 에워싸면서 축조되었다. 따라서 성벽의 둘레는 약 600m에 이른다. 이전에 조사된 보고서에는 둘레가 약 250m 정도로 나와 있는데, 아마도 한쪽 산봉만을 에워싼 것으로 보고 계산한 결과로 생각된다. 성벽은 전체를 자연지형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대부분이 붕괴되어 성벽의 통과선만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특히 두 산봉이 만나는 마안부는 성벽이 완전히 붕괴되어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이 전의 조사에서 하나의 산봉만을 에워싼 것으로 착각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남아 있는 성벽으로 보아 두 산봉을 에워싼 것이 분명하며, 전체를 석성으로 축조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원래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곳이 없어서 정확한 축성법은 알 수 없었다. 성내의 시설물로는 문지와 건물지를 들 수 있다. 성벽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어 문지의 흔적을 찾기도 매우 어려운 형편인데, 마안부의 남벽쪽과 북벽에 성벽이 끊긴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원래의 성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내에서 유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북벽 근처에서 회청색 경질토기편 2점을 수습하였다.

천마봉산성_ 청양군 청양읍 군량리

 청양읍에서 화성방면으로 약 1km 정도 가면 군량리에 닿게 되는데 천마봉산성은 이 군량리에 자리하고 있는 토축산성이다. 이 지역에서는 산성 주변에서 돌칼이 수습되었다고도 하는데, 상한시대부터 산성이 축조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산성은 테뫼식산성으로 능선을 삭토하여 구축한 것으로 보이는데, 천마봉 아래 능선을 이용하여 동, 남, 북벽을 구축하고, 북서벽은 천마봉과 연결되는 능선상에 3m높이로 토축하여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남벽은 완만한 자연지세를 삭토하고 약 25m 정도를 석축하여 완성하였는데, 석축은 이 곳에서만 보인다. 이에 비해 북서벽은 천마봉에서 내려오는 능선을 삭토하여 약 20m 정도에 걸쳐 3m 높이의 성벽이 확인되고 있다.
원래의 모습이 완전히 퇴락되어 정확한 성벽의 통과지점을 확인하기도 어려우며, 성곽과 관련된 시설물도 전혀 확인할 수 없다. 성내에서 유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 조사에서 산성으로 보고하고 있으나 실제로 산성인지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테뫼산성_ 청양군 청양읍 교월리·벽천리

청양읍에서 부여로 통하는 29번 국도를 타고 약 1km 쯤 남하하면 왼쪽으로 지천천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닿게 되는 곳이 벽천리인데, 테뫼산성은 이 벽천리 마을의 뒤쪽에 솟아 있는 표고 160m의 나지막한 구릉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성에 오르면 북쪽과 서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즉, 동쪽으로는 불과 1km 거리에 표고 240m의 퇴메산이 솟아 있고, 거기에서 산맥이 남쪽으로 병풍처럼 이어지면서 표고 340m의 남산을 이루고, 다시 이 남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면서 280m의 산봉이 솟아 있어 동쪽과 남쪽으로는 전망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러나 북쪽으로는 청양읍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고, 우산성과도 잘 연결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지천천과 함께 청양에서 대천쪽으로 통하는 국도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 점에서 이 테뫼산성도 서쪽이 주된 방향임을 알 수 있다.
이 산성은 종래에 토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석축산성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성벽의 대부분이 붕괴되고, 성내의 토사가 흘러내려 성벽을 뒤덮어 마치 토성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성벽의 둘레도 약 300m 정도의 소규모로 파악하였으나 실제로는 약 600m 정도에 이른다.
성벽의 대부분은 붕괴되어 통과선만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인데, 남벽과 남서벽쪽에는 붕괴된 성돌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석성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원래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구간이 없어 정확한 축성법은 확인할 수 없다.
성내의 시설물로는 문지와 건물지 등을 들 수 있다. 문지는 성벽이 완전히 붕괴되어 뚜렷한 형적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인데, 서벽쪽에 성벽이 끊긴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원래의 성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북벽쪽에도 비슷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역시 문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성내에 약 5~10m 크기의 회랑도가 돌려져 있어 성내의 면적이 비교적 넓은 편인데, 특히 북벽쪽에는 현재 밭으로 개간되고 있는 곳이 남아 있어 건물지로 추정된다. 이곳 주변에서는 토기편도 수습할 수 있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추정 북문지의 서쪽에는 마치 치성처럼 돌출된 부분이 남아 있다. 성벽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오다 이 부분에서만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고, 6*7m 크기의 장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어 치성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치성을 축조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치성처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규모에 비해 성내에서는 유물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편 약간을 수습하였다.